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 자크 루소 (문단 편집) === 근현대 교육에 미친 영향 === 『에밀』은 루소가 자신의 저서 중 가장 뛰어나고 중요하다고 여겼던 작품이다. 그러나 "20년의 성찰과 3년의 작업"을 치르게 했던 이 작품은 출간 당시부터 파리 고등법원으로부터 분서령을 받는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루소의 책은 더 유명해졌고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맥이천(J.A. McEachern)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1762년에서 1800년에 이르기까지 『에밀』은 해적판과 번역본을 포함해서, 약 60여 판이 출판됐다. 이에 따라 『에밀』에서 소개된 방법대로 아이들을 키우려는 시도도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전류와 자기장의 관계를 나타내는 '앙페르의 법칙'을 발견한 프랑스 물리학자 [[앙드레 앙페르|앙페르]]와 베네수엘라의 독립 혁명 지도자 [[시몬 볼리바르|볼리바르]] 등도 루소의 저서에서 쓰인 대로 키워진 사례이다. 프랑스의 왕세자 [[루이 16세]]도 언젠가 높은 신분에서 추락할 경우를 대비해서 기술을 가르치라는 루소의 조언대로 아이때 열쇠공 훈련을 받기도 했었다. 또한 후대의 많은 인물들이 『에밀』의 사상에 빠져들었다.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3시 30분이 되면 산책을 해서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로 유명한데, 딱 두 번 산책을 빼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한 번이 루소의 저서 《[[에밀]]》을 읽다가 놓친 것. 그리고 또 한 번은 프랑스 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빼먹었은 것이라고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괴테]]는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호메로스를, 그리고 머리에는 언제나 『에밀』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또한 자신의 진중 문고에 『에밀』을 꼭 챙겨 다녔다고 한다. 『에밀』은 서구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교육사가 보이드는 『에밀』의 교육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한다. "『에밀』은 18세기의 교육적 저작 중에서 비길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끼친 영향으로 판단한다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저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18세기 후반 프레빌이나 드블레 같은 교육자는 『에밀』의 영향을 받아 역사책이나 산수책을 새롭게 만들어냈고, 또 다른 교육자들은 루소의 교육관에 동조하면서 무엇보다 어린이를 교육 활동의 중심에 두는 교육을 시도하려고 노력하였다. 바제도는 루소의 영향을 받아 독일의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자연 학습, 체육, 수공 교육 등 실제적 활동을 학교 교과에 도입했다. 또한 체벌과 언어 학습에서 기계적인 암기 방식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1774년에 데사우(Dessau)라는 곳에 설립한 '모범 학교(Philanthropinum)'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함과 동시에 공공의 이익 증진,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애국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실험 학교이다.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에밀』을 읽고 감동하여 '왕좌에 있으나 초가에 있으나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신념으로 어린이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지능, 신체, 도덕의 조화로운 발달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는데, 무엇보다 그는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어린이들이 공동으로 학습할 때야말로 공감과 신뢰에 기초한 아름다운 인간애가 나타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민중 역시 교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세기 신인문주의 교육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와의 만남을 통해 루소의 교육철학에 공감하여 자신의 교육 운동을 전개했다. 무엇보다 그는 억압적인 교육 방식을 물리치고 어린이가 놀이와 노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독립적이고 협력적인 사회 주체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프뢰벨은 초등학교에 취학하지 전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일생을 바쳤으며, 그가 만든 '킨더가르텐'은 오늘날의 '유치원'에 실천적 골격을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진보적 교육 운동의 대표자 [[존 듀이]]도 루소의 교육철학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전통적 지식관이나 학교관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실험학교를 설립하였고, 학교 교육의 주된 목적은 민주사회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은 주로 『학교와 사회』, 『민주주의와 교육』에 나타나 있는데, 그에 따르면 교육이란 "경험의 끊임없는 개조이며, 미숙한 경험을 지적인 기술과 습관을 갖춘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거나, 반대로 학생들의 자발성에만 의존하면 불충분하므로 여러 가지 경험에 참여시킴을써 창조력을 발휘시킬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을 위하여 학교는 현실사회의 모델일 뿐만 아니라, 사회 개조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이상사회로서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20세기의 모든 교육 개혁가들에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클라파레드를 비롯해, 페레, 프레네, 일리치, 섬머일 학교의 닐 등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을 고민한 모든 사람은 루소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사유에 루소가 이룩한 성과를 인정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